[노동과세계] [인터뷰] 370일의 고립, 내 희망의 끈은 ‘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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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말한 사람들] 전서정 민주일반연맹 일반노동조합 톨게이트지회장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는 전서정 지회장. 사진=민주노총
[노말한 사람들]은 ‘노동을 말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다양한 직종에서 일하는 민주일반연맹 조합원들이 직접 들려주는 노동 이야기다. 노동자들이 당당한 주체로 살아가기 위해 어떤 선택을 했는지, 투쟁의 이유와 그 과정을 차분히 따라간다.
개인의 문제로만 남겨졌던 숨겨진 이야기들을 공유하며, 지역과 업종, 노조는 달라도 우리가 함께임을 확인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나는 경남 의령에서 태어나 낮엔 일하고, 저녁엔 공부하며 성장했다. 당시 많은 사람이 그랬듯 학업에만 전념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도 배움은 놓고 싶지 않아 일을 하면서 야간고등학교를 다녔고, 졸업 후에는 서울로 올라가 일을 시작했다.
학교에 다니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 삶에서 노동이 없었던 적은 없다. 처음에는 그저 먹고살기 위한 일이었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평생 이어진 노동이 내 삶을 몇 번이나 흔들고, 끝내 나를 노동조합이라는 ‘끈’으로 이끌게 될 줄은.
6년 일한 대가는 ‘16만 원’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전통 혼례 음식을 하는 곳에서 일을 시작했다. 사무직으로 들어갔다가 음식까지 하게 됐고, 그러던 중 결혼을 하게 되어 마산으로 내려왔다. 내려와서는 섬유회사에 6년 정도 다녔는데, 그 회사가 부도났다. 6년 일한 퇴직금을 못 받은 것뿐만 아니라 6개월 동안 급여도 밀려 있는 상태였다. 6개월치 임금과 퇴직금은 끝내 받지 못했고, 오랜 파산 절차 끝에 내 손에 돌아온 배당금은 고작 16만 원이었다. 허탈함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마냥 억울해하며 지낼 수 없어 지인 소개로 톨게이트 수납원으로 들어가서 일하기로 했다. 2004년 4월, 고속도로에 있는 칠원영업소라는 곳에서 일을 시작했다. 이전 회사와 달리 임금 체불 걱정이 없어 좋았다. 그런데 월급이 제때 들어오는 것뿐이지 갈취가 너무 심했다. 계약한 금액대로 수당이 안 들어온다거나 계절마다 지급돼야 하는 피복비가 지급 안 되는 일 등 갈취가 많았다.
그러던 중 영업소의 사장이 바뀌게 되면서 고용 승계에 대해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당시 사장이 바뀌면 노동자들과 재계약을 안 하는 경우가 많아, 계속 일을 하고 싶은 동료들이 서로 견제하면서 소문을 낸 것이다. 나 역시 그때 자녀 공부도 시켜야 해 안정된 일자리가 절실했다. 그래서 내가 주변에서 일자리를 찾아보고, 칠서영업소라는 곳으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가족과 명절을 보내고 싶다’는 욕심
톨게이트 영업소 요금수납 부스에 ‘단결 투쟁’, ‘직접고용 쟁취’ 문구가 붙어 있다. 사진=민주일반연맹
2013년에 칠서영업소로 오고 2년 뒤, 나는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월급’이라는 대가를 받으니 당연히 큰 대우는 바라지 않지만 우리도 남들이 받는 기본적인 것은 누려보고 싶었다. ‘남들 쉬는 주말에도, 명절에도 우리 한번 쉬어보자’ 하는 마음이었다. 영업소에서 일하는 10년 동안 우리는 명절에 단 한 번도 쉬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명절을 가족들이랑 보내고 싶었고, 주말에 친구들이랑 놀러가고도 싶고 커피도 한 잔 마시는 그런 여유가 갖고 싶었다. 하다못해 내 연차를 쓰더라도 눈치 보면서, 다른 동료들과 날짜를 맞춰가면서 쓰지 않고 당당하게 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문제는 쉬는 날만이 아니었다. 영업소에서 일하는 동안 우리에게 업무 지시를 한 건 영업소가 아니라 한국도로공사였고, 엄연한 ‘불법파견’이었다. 그래서 2015년 동료들과 노동조합을 만들고 도로공사에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한국도로공사의 대응은 기가 막혔다. 요금 수납 업무를 자회사로 이관하면서, 우리를 자회사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회사 정규직은 말만 정규직일 뿐, 도로공사가 지시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지금의 영업소 비정규직과 다를 게 없지 않은가. 실제로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도로공사를 상대로 직접고용 소송을 제기해 1, 2심에서 승소하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자회사 전환을 거부했고, 결국 1,500명이 집단 해고를 당했다.
해고된 노동자들의 싸움은 도로공사 본사 점거농성으로 이어졌다. 그때 우리가 점거하던 도로공사 본사에 갑자기 뒷문이 열리며 많은 인원이 몰려오는 것을 보았고,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작정 티셔츠를 벗고 ‘탈의 농성’을 했다. 잘 때는 신문지를 덮고 잤다. 당시 사진이 아직도 인터넷에 남아 있는 걸 생각하면 그저 웃을 수만은 없는 사연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정규직이 되고 처음 발령받은 게 창녕지사였는데, 나를 못 받겠다고 했다. 도로공사 본사에서 점거 농성을 한 지회장이다 보니 소문이 안 좋게 났던 것 같다. 그래서 산청지사로 발령을 다시 받아 거기로 출근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도로공사의 정규직 노동자가 됐다.
근로계약서도, 원직 복직도 없었다
2020년 5월 14일, 그때 도로공사에 첫 출근을 하면서 근로계약서를 쓰려 했는데 차마 서명할 수 없었다. 그렇게 힘들게 투쟁해서 쟁취한 정규직 전환이건만 계약서상에 ‘원직 복직’이 보장되지 않은 것이다. 임금이 정해지지 않고 업무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 계약서에 서명하면 우리는 평생 최저임금, 그리고 ‘원직 복직’이 안 된 채로 남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작성을 거부했다.
그 대가는 가혹했다. 이전에 했던 수납원 업무를 다시 하리라 생각했던 나는 여전히 졸음쉼터, 도로 환경정비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업무에 임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근로계약서를 쓰지 못한 채다. 불법파견 임금소송은 14년째 진행 중이며, 임금 역시 최저임금 수준에 임금피크제까지 적용받고 있다. 정규직이라는 이름은 얻었지만 내가 일할 자리와 정당한 임금은 되찾지 못한 것이다.
직위 해제도 있었다. 일한 지 채 1년도 안 됐던 2021년 1월, 나는 직위해제를 당했다. ‘그 투쟁도 다 이겨냈는데, 이것도 한두 달이면 끝나겠지’ 이런 생각을 하며 버텼는데 일주일이 한 달이 되고, 두 달이 되고, 결국 1년이 되었다. 내가 이제 그만둬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했지만 이 자리에 오기 위해 그동안 했던 고생을 떠올리니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나와 같이 출근한 사람들이 다 일하러 나가는데 나 혼자 덩그러니 남아 있을 땐 평소엔 많이 오던 민원 전화도 유독 안 와서 사무실이 더욱 고요했다. 엄마들이 명절에 자식들이 다 왔다가 한 번에 떠났을 때 느낄 것 같은 공허함이었다. 대구고등법원에서 나의 직위해제가 부당하다고 판결하여 370일 만에 복귀할 수 있었다. 정규직 전환을 위해 싸웠고, 정규직이 된 뒤에는 다시 직위해제 철회를 위해 싸웠다. 투쟁이 끝나지 않는 나날이었다.
여전히 근로계약서도 없고, 임금피크제로 임금이 30%나 깎이고, 직위해제 때문에 상여금도 다 못 받았다. 처음에는 많이 속상했다.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받고,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받고, 차별 없는 대우를 받고 싶어 시작한 노동조합 활동이었는데 오히려 급여가 깎이고, 상여금을 못 받게 되니 허탈했다. 우리 노조에는 관련 규정이 없어서 구제가 어렵다고 했다.
이때 나는 ‘노동조합 활동 안 한 사람은 정상적인 월급 다 받아 가는데, 열심히 투쟁한 나는 왜…’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나의 사례 때문에 노조에 관련 규약이 생겼다. 이렇게 “이런 거는 왜 이럴까” 하며 혼자 생각하던 것들이 나로 인해 조금씩 변화해 간다는 생각이 들고, 나 같은 일을 겪는 사람이 생긴다면 어디든 가서 목소리를 내야겠다고도 결심했다.
노동조합은 ‘희망의 끈’
어느 날은 후회했고, 어느 날은 좌절했다. 그래도 다시 나아가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난 동지를 얻었고, 정규직 노동자가 되었다. 노조를 만든 것, 그리고 정규직 전환 투쟁을 한 것, 이것들이 내 인생에서 느낀 가장 큰 보람이다.
나도 부족하지만 다른 동지들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지회장인 내가 조합원 옆에 있을 때와 없을 때 조합원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걸 느꼈다. 노동자들 뒷배는 ‘노동조합’이다. 그래서 은퇴가 1년도 안 남은 이 시점에도 조합원들에게 신신당부한다.
“노조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절대 아니다. 존재 자체가 힘이다. 저 사람들(사용자)이 우리한테 함부로 할 수 없는 이유가 우리에게 노동조합이 있기 때문이다. 네가 여기서 벗어나는 순간 저 사람들이 너를 어떻게 대하겠느냐. 노조는 희망의 끈이자 목숨줄이다.”
내 인생을 통해 깨달은 교훈이며, 조합원들에게 입이 마르도록 하고 있는 조언이자, 당부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 붙잡아 온 노동조합이라는 끈은 아직 끝나지 않은 나의 싸움과도 이어져 있다. 퇴직까지 1년도 채 남지 않았지만, 직접고용된 지 6년이 지나도록 쓰지 못한 근로계약서를 쓰고, 원래의 내 업무로 돌아가는 것, 오랜 시간 이어진 임금소송을 마무리하는 것이 과제로 남아 있다.
이 싸움이 끝난 뒤에도 그 끈을 놓을 생각은 없다. 퇴직 후에도 내가 필요하다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조합원들에게 말했다. 오랜 노동과 투쟁의 시간을 지나 내가 끝까지 붙잡고 있는 것은 결국, 혼자였던 노동자들을 서로의 곁에 서게 한 ‘노동조합’이라는 끈이자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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