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시행 이후 하청 노조에 대한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한 첫 노동위원회 판정이 나오면서 ‘진짜 사장’과 교섭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전국 지방노동위원회에서 원·하청 교섭과 관련해 예정된 사건만 6일부터 5일간 20여건이다. 공공기관 자회사·용역 노동자만이 아니라 포스코·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 같은 주요 민간기업 하청·특수고용 노동자들에 대한 원청 사용자 책임이 판가름나게 된다. 개정 노조법 시행 한 달이 가까워지면서 사용자성 인정 범위와 하청업체 복수노조 교섭단위 분리 기준 등에 대한 가닥이 어느 정도 잡힐 것으로 보인다.

5일 <매일노동뉴스>가 전국 13개 지방노동위원회의 심판회의 일정을 6일부터 10일까지 확인해 보니 5일간 서울·인천·충남·경북·울산·전남·제주 지노위에서 원·하청 교섭과 관련한 사건이 총 21건 다뤄질 예정이다.<표 참조> 6일 공공연대노조가 한국산업단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교섭요구 사실공고 시정신청 사건을 시작으로 8일 금속노조·플랜트건설노조가 제기한 포스코 교섭단위 분리 신청, 9일 택배노조가 접수한 CLS 교섭단위 분리 신청 등의 판정이 예정돼 있다.

4개 공공기관 중 2곳만 교섭사실 공고
‘모범 사용자’ 역할 외면, 사용자 책임 회피?

충남지노위는 지난 2일 공공연대노조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한국원자력연구원·한국자산관리공사·한국표준과학연구원을 상대로 제기한 교섭요구 사실 미공고에 대한 시정 신청 사건에 대해 ‘인용’ 결정을 내렸다. 노동위 결정 뒤 4개 공공기관 중 원자력연구원·원자력안전기술원은 지난 3일 교섭요구 사실을 공고했지만 자산관리공사와 표준과학연구원은 아직 시정명령에 응하지 않았다.

절차적으로 노사 양쪽은 지노위 결정에 불복하는 경우 중노위에 재심을 신청할 수 있다. 노동위원회규칙에 따르면 지노위의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 등 사건 결정에 불복할 때 결정서를 받은 날부터 ‘10일 이내’에 중노위에 재심을 신청할 수 있다.

다만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한 공공부문의 모범적 사용자 역할과는 거리가 멀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미 여러 공공기관들이 사용자 책임 회피를 위해 컨설팅·연구용역에 예산을 투입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용자성 지우기’ 비판이 제기됐다.

노조는 ‘진짜 사장’과 교섭을 위해 노동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공공연대노조는 3일 “충남지노위 인용 결정에 불복하고 중노위에 재심을 신청하겠다는 의도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며 “노동부는 사용자성이 인정된 공공기관들이 즉시 교섭절차를 개시하도록 지도해야 한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노동위 시정명령 이후에도 원청 사용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지방관서에서 이행을 지도하고 그럼에도 불응하면 부당노동행위로 사법조치할 방침이다. 노조는 교섭요구 사실 미공고 자체를 교섭거부로 보고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하거나 노동청에 형사 고소를 할 수 있다.

편집 김효정 기자편집 김효정 기자

노동위 “공기관, 안전관리·인력배치에서 실질적 사용자 지위”

충남지노위가 인용 결정을 내린 구체적인 근거는 한 달가량 뒤에 나오는 결정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충남지노위는 심판회의 당일 보도참고자료를 통해 “용역계약서와 과업내용서 등에서 각 공공기관이 하청노동자들의 안전관리 및 인력배치 등에서 노조법상 실질적 사용자의 지위에 있다고 인정했다”고 설명했다.

개정 노조법은 하청노동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원청을 사용자로 본다. 노동위는 노조가 요구한 교섭 의제를 검토해 사용자 여부를 판단하고 사용자성이 인정되면 교섭요구 사실을 공고하라고 시정명령한다. 모든 의제에 대한 사용자성을 판단해 시정명령을 한 것인지, 여러 의제 가운데 하나에 대해서만 판단해 공고를 하라고 한 것인지는 결정서가 나와야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노동부 ‘개정 노조법 해석지침’에 따르면 도급관계에서 일반적인 계약이행의 내용이나 절차에 관해 지시하는 것만으로는 원청의 사용자성이 인정되지 않는다. 관리자가 청소용역업체에 일별 작업장소 배정 등을 과업지시서를 통해 정하거나 기준을 제시하는 경우를 예시로 들었다. 반면 작업계획서나 표준작업지침서 등이 일반적인 정보제공 수준을 넘어 작업속도, 업무량 등 노동강도를 실질적으로 결정하면 근로조건에 대한 ‘구조적 통제’로 판단될 수 있다.

원청 사용자성 어디까지 인정될까

4개 공공기관 하청 노조에는 자회사와 용역업체 소속이 섞여 있다. 문재인 정부 때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과정에서 직접고용 대신 자회사로 전환된 경우와 용역업체 소속으로 남아 있는 경우 등 4개 기관별로 상황이 다르다. 콜센터·미화·경비·시설관리 등 업무를 하고 있다.

해당 업무는 다른 공공기관이나 민간기업에서도 자회사로 운영하거나 도급을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번 지노위 결정이 다른 사건들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집중된다. 이달 7일에는 대학교 간접고용 청소노동자들이 대학을 상대로 제기한 교섭요구 사실 미공고 시정신청 사건에 대한 심판회의가 열린다. 은행·카드 용역업체에서 일하는 콜센터 노동자들이 제기한 사건도 9일 판단이 이뤄진다. 간접고용 노동자에 대한 원청 사용자의 책임을 어디까지로 볼지가 쟁점이다.

이번 결정을 계기로 하청 노조의 교섭요구에 응하지 않은 채 ‘눈치보기’를 하던 원청 사용자들이 교섭요구 사실을 공고하거나 교섭요구 이후 원청의 침묵에 대응하지 않았던 하청 노조들이 추가로 시정해 달라고 신청할 수도 있다.

병원에서 미화·시설관리·환자이송 등 업무를 하는 하청노동자들이 조직된 보건의료노조는 지난달 30일 광주시·전북도에 각각 위치한 대형병원을 상대로 교섭요구 사실 미공고에 따른 시정신청을 제기한 상태다. 노조 관계자는 “도급 계약서 내용에 인원, 업무 범위, 근무시간 등이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며 “실질적·구체적 지배·결정을 하는 지위에 있는 자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경북지노위 첫 교섭단위 분리 결정 ‘신중 모드’

지난 주 민간기업 가운데 첫 판단이 나올 것으로 예상됐던 포스코 사건은 회의를 한 차례 더 열기로 하면서 결정이 미뤄졌다. 사용자성 판단뿐만 아니라 복수노조 사업장에서 교섭단위를 어떻게 분리할 것인지 가늠자 역할을 할 수 있는 만큼 판단에 신중을 기하는 모양새다.

경북지노위는 금속노조와 플랜트건설노조가 포스코의 하청 전체 교섭단위에서 각 노조를 분리해 달라고 신청한 사건에 대해 3일 심문회의를 열었지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경북지노위는 “당사자 간 이견이 첨예하게 대립해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2차 심문회의를 추가로 개최한 뒤 판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2차 회의는 8일에 열린다. 교섭요구 사실공고 건과 달리 교섭단위 분리 신청 건은 노동위가 ‘30일 이내’ 결정하면 된다.

포스코 사건만이 아니라 교섭단위 분리 여부를 결정하는 심판회의는 잇따라 열릴 예정이다. 특히 9일에 사건이 집중돼 있다. 여러 노조가 개정 노조법 시행 당일인 3월10일 교섭단위 분리신청을 했고, 이들 사건에 대한 결정 기한(30일)이 다다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의 교섭요구 사실 공고문. <공공연대노조>한국원자력연구원의 교섭요구 사실 공고문. <공공연대노조>

 

 
어고은 기자 열심히 듣고 쓰겠습니다.